화랑도(花郎徒)

 

  1.화랑의 구성

  화랑은 신라시대의 청소년 수련단체로서 선량, 국선, 풍월주 등으로도 불렸다. 중국의 역사책인 삼국지, 후한서의 동이전에는 삼한사회에 마을의 청소년들이 그들 고유의 집회소를 가지고 있다고 쓰여있다.
  오늘날 두레의 근본이라 여겨지는 이러한 인위적 조직은 신라가 중앙집권국가로 확대됨에 따라 중앙의 조정을 받는 원화(源花)제도로 개편되었고 이후에 화랑도로 확대 개편되어 통일신라로 이르게 된 것이다.

  화랑도는 국가에 속하였으나 정식 국가기관은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반관반민(半官半民) 단체였으며 신문왕이후 최고학부인 국학이 정비되었는데도 계속하여 민간의 교육기관으로서 남아있었다. 이것은 화랑의 구성이 가지는 특징때문인데, 화랑은 한 시대에도 여러 단체가 존재했으며 자율적인 지도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화랑도는 귀족출신인 화랑 한명과 그의 스승격인 승려 한명, 그리고 많으면 수백명에 이르던 낭도로 이루어진다. 낭도가 일반 평민이고 승려 역시 귀족과 다른 신분임을 감안할 때 화랑도는 혈연의 관계를 초월한 자율의지에 의한 결사체라고 생각할 수 있다.


2.삼국통일과 화랑

  화랑도는 신라가 백제, 고구려와 치열한 국경항쟁을 벌이던 진흥왕때에 제정되어 삼국통일을 이룩할 때까지 크게 활기를 띄었다. 진흥왕은 576년에 종래부터 있어오던 여성 중심의 원화(源花)를 폐지하고 남성 중심의 화랑도로 개편하였다.

  기록상으로는 576년에 화랑도가 창설된 듯하지만, 실제로는 진흥왕 초기에 이미 화랑도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562년 대가야 정벌시에 큰 전공을 세운 사다함(斯多含)이 유명한 화랑이었다는 데서도 확인된다. 화랑도는 이 중대한 시기에 국가가 필요로 하는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통일신라 초기의 역사가 김대문(金大問)은 그의 저서 화랑세기(花郞世記)를 통하여 현명한 재상과 충성된 신하, 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졸들이 화랑도에서 생겨났음을 말하고 있다.

  화랑도는 사태가 급할 때에는 화랑조직 그대로 부대에 배속되기도 하였고,
수련기간이 끝나면 정규군대에 편입되어 정식군인으로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화랑도의 정신이 구성원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에게까지 널리 퍼져서 시대정신의 구현에 이바지한 것도 이때 쯤이다. 또한 통일 이후에 점차 귀족중심으로 자리잡아가던 신라의 사회가 신분의 위아래를 떠나 단합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같은 화랑도가 신분의 차이를 두지않고 조직되었던 때문이기도 하다. 화랑도는 개인의 신분, 욕심 등을 내버리고 철처히 국가를 위한 애국을 강조하던 단체였기 때문이다.

3.화랑의 정신

  화랑은 신라 진평양때 원광법사가 제정한 세속오계인 충,효,신,용,인의 다섯가지 덕목을 중요한 도의로 삼고 행동하였다. 이러한 화랑의 정신은 신라가 통일을 완수하던 당시 200년간이 신라의 전 역사 중에 가장 어려웠던 시대임을 감안할 때, 이들의 정신이 사회를 지탱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끈 근간이 되었음을 알수 있게 한다.

  또한 이들은 진평왕 당시 크게 번성하던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일반인들은 화랑을 미륵으로, 낭도들을 미륵을 쫓는 무리로 여기도록 하였다. 김유신은 이와같은 화랑의 대표적 인물로서, 그가 그의 추종무리를 용화향도로 이끌었다는 기록은 당시 사람들이 자신들의 힘든 생활과 전쟁을 끝내고 이상국가로 안내해 줄 사람들이 곧 화랑도라고 믿고 있었음을 반증하고 있다.

  화랑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우(死友), 맹우(盟友)라 일컸던 우의인데 이것은 그들이 자신들 스스로 모여 조국수호와 이상세계 건설이라는 목표를 향해 모든 것을 희생했을 만큼, 조직원 사이의 신의가 두터웠음을 말해준다.

  또한 화랑도는 도교의 영향을 받아 춤과 노래를 즐기고 명산고적을 답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이러한 모든 화랑도의 정신은 고려시대의 팔관회(八關會)나 사학12도 등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현재까지도 우리 민족의 덕목으로 받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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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어려운 국가 위기의 시대, 화랑도의 정신을 근간으로 다시 한번 이 땅의 젊은이들이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추스려야 하지 않을까. 삼국의 통일이라는 위대한 명제앞에 자기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내던진 관창을 비롯한 수많은 화랑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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