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story of Muay Thai



  한국에서 비행기로 남서쪽을 향하여 5시간쯤 날면 태양과 꽃이 아름다운 나라 타이에 이른다. 이 나라는 오랜 역사의 문명과 현대의 문명이 한데 어울어져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Muay Thai(무에타이)는 타이의 전통 국기이며, 문헌 기록으로는 약 2000년, 비공식적으로는 500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Muay Thai의 어원적 의미는 Muay는 무술, Thai는 태국을 의미한다.
말그대로 태국의 무술이란 뜻이다. Muay Thai에 관해서 제대로 알려진 사실은 거의 없지만, 타이의 오래된 군사무술 지도서인 유타사트(Yuttasart)라는 책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전해 오고 있다. 이 책에는 창과 칼, 전쟁용 도끼 등을 이용한 전투기술이 나와 있는데, 여기서 창은 사람의 팔, 도끼는 주먹, 칼은 팔꿈치가 되는 등 신체의 모든 부분을 무기로 하는 새로운 기술이 전해졌다. 즉 맨손으로 싸움을 하는 새로운 형태, Muay Thai가 출현한 것이다. 전쟁을 위한 군인들의 무술이 새로운 스포츠로 자리 잡은 것이다. 때문에 다른 많은 스포츠와는 달리 Muay Thai는 처음부터 어떠한 형태를 갖고 시작하지 않았으며, 새로운 공격법이나  펀치가 최근까지 Muay Thai의 규칙에 정기적으로 추가되었고, 다른 비슷한 격투기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한 예로 킥복싱은 Muay Thai에 가라테와 복싱을 접목시킨 일본식 격투기로 경기 방식이나 규칙이 Muay Thai와 거의 유사하다. 그리고 권격도,
프로 격투기, 산수(산타)도 역시 그 뿌리는 Muay Thai 다.
 

  Muay Thai 경기는 3분간 5회전으로 이루어지며, 각 경기 사이에 2분간 휴식 시간이 있다. 영국식 권투와 비교해 보면, 경기 시간이 짧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Muay Thai 에서는 다양한 공격법이 허용되기 때문에 경기 강도가 아주 높다. 무에타이는 일반 영국식 권투와 아주 다르다. 일반 권투가 위로 향한 토르소(torso)를 주 타격 부위로 상대를 속이거나 유인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무에타이에서는 전신을 타격부위로 하며 체급을 달리하여 싸우기가 쉽게 되어있다. 작은 경량급의 선수가 큰 중량급인 선수를 이기는 것이 흔한 일이다. 왜냐하면 손과 발 뿐만이 아니라 무릎, 팔굽등 인체의 모든 부분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과 발은 상대적으로 중량급의 선수가 유리하지만, 일반적으로 팔굽은 주먹의 3배, 무릎은 주먹의 5배의 위력이 있어 경량급도 기본적인 파워에서는 밀리지 않는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파괴적인 파워에 비해 선수를 보호해 주는 것이라고는 단순한 경기복(trunk)과 낭심 보호대, 치아보호장구(mouse piece) 밖에 없다. 절대로 때려서는 안되는 부분은 오로지 머리와 낭심뿐. 타이에서는 머리를 건드리면 영혼이 빠져나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바닥에 쓰러진 선수를 때리거나 침을 뱉어선 안 된다는 것 정도가 선수들을 제지하는 몇가지 규칙이다. 이것을 제외하면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싸울 수 있다.

  Muay Thai에 관한 전설은 많다. 그 중 18세기 사람인 나이 카놈 톰(Nai Khanom Tom)은 타이의 최대 영웅으로 해마다 3월 17일이면 모든 복싱 경기장에서 그를 기리는 행사가 벌어진다.

  1767년 버마가 타이를 침략, 당시 수도였던 아유타야(Ayuttaya)를 불태우고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붙잡아 자기 나라로 돌아갔는데, 이 포로 중에 나이 카놈 톰이 있었다. 버마와 타이의 관계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에 못지않다. 물론 악역은 버마(현재 미얀마)이다. 1774년 버마의 왕이었던 망그라(Mangra)는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 파고다를 기념하기 위해 랑군에서 일주일간 공양을 바치기로 결정하고, 이 행사의 일환으로 포로로 잡혀 있던 Muay Thai 선수들과 버마 선수의 시합을 마련했다. 그는 또 "리카이"라고 불리는 코메디 소극형식의 검투 경기 등도 지시했다. 시합 링은 왕궁 앞에 세워졌다. 축제의 첫날에 버마의 한 귀족이 버마의 선수들을 이끌고 왕에게 경의를 표하며 나왔다. 물론 왕은 버마의 선수들을 격려해주며 그들을 응원했었다.
  시합이 시작되어 레프리가 한 선수를 나이 카놈 톰 이라고 소개를 했다. 포로로 잡혀온 많은 타이인들은 그를 열렬히 응원했다. 게임을 시작하자 마자 나이 카놈 톰이 상대를 빙빙 돌며 춤을 추어 버마 관중들을 어리둥절 하게 했다. 바로 [Wai Kruu]였던 것이고, 시작신호가 울렸을 때, 나이 카놈 톰은 상대가 쓰러질때까지 팔꿈치 공격과, 턱 연타를 쳐서 K.O 시켰다.

  하지만 레프리는 와이크루로 버마선수가 얼떨떨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는 졌다고 할 수 없다고 판정했고 그 결과 나이 카놈 톰은 9명의 거인 버마 선수와 싸워야 했다. 나이 카놈 톰은 무에타이의 명예를 위해 9명의 버마 선수들과 싸우기로 했고 모두 그의 발 아래 쓰러졌다. 그의 마지막 상대는 야카이에서 그저 축제를 즐기러 왔던 코우치였다. 그는 싸우기를 자원했고, 나이 카놈 톰의 무릎 공격을 받고 곧 쓰러졌다. 이에 감탄한 망그라는 그에 매료되어 돈과 예쁜 아내 몇명 중 어느쪽이 좋을지 물어보았고, 그는 예쁜 아내 쪽을 택하여 왕은 자신의 부족 출신 버마 소녀 2명을 그에게 주었다. 그리고 자유를 주어 그는 이 아내들과 함께 무사히 태국으로 돌아와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는 무에타이의 기예를 태국 국경을 넘어 선양한 최초의 인물로 간주된다. 역사를 통해 볼때 나이 카놈 톰은 망그라 앞에서 9명이상의 버마 선수들을 물리쳐 무에타이에 감동한 왕이 태국인들은 타고난 기질들이 있다고 말하게 하였다. 다른 무기없이 맨손으로 한 사람이 너끈히 여러 상대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천부적인 자질은 거의 마술적인 것이었고, 이렇게 무에타이의 신화가 탄생했다.
 
 

  유럽인들은 60년전부터 무에타이에 관심을 두어왔다. 1차 세계 대전 동안 태국은 연합국들을 도와 파병을 했었고, 무에타이가 [동양의 스포츠]로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마인츠 신문은 "무에타이는 경이로운 스포츠이긴 하나 보기는 어렵다. 선수는 민첩하고 강인하며 터프하다. 이 스포츠는 스릴이 있을뿐 아니라 기묘하고 특이한 오락의 형태이다."라고 서술했었다.

  예전에는 총이 요즘과 같이 모두에게 공급되지 않고 대부분의 태국 군인들이 자신들의 칼에 의지해야 했으므로 무에타이는 태국 군인들에게도 널리 보급되었다. 대부분의 태국 군인들은 근접 전투에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발차기를 배웠다. 무에타이는 다음의 2가지 이유에서 학습되었다.

첫째, 근접 전투에서의 공격 목적
둘때, 자기 방어의 목적

따라서 이 기간동안 무에타이는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나이 카놈 톰(Nai Khanom Tom)의 전설 때문인지 타이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의 Muay Thai가 세계 최고라고 믿고 있으며,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가라테나 쿵후 등 다른 무술이나 격투기 챔피언들을 초청해 Muay Thai 선수들과 시합을 하게 한다.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Muay Thai 선수들은 외국의 챔피언들을 어김없이 때려 눕혔다. 몇 년 전에는 다섯명의 가장 강한 홍콩 쿵후 선수들이 Muay Thai 선수들과 시합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그들 역시 모두 1회전에  K.O 당하고 말았다.

  1977년 3월 12일, 미국에서 가라데와 경기를 가질 때, 무에타이 선수는 무릎과 팔꿈치 등을 쓰지 못하게 되어 불리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쉽게 이겼다.

  1977년 9월 6일 화요일, 방콕의 룸피니(Lumpinni) 복싱 경기장에서 2명의 무에타이 선수가 가라데 선수들을 상대로 싸웠는데, 가라데 선수들이 완전히 전멸했었다.

(관련자료 =>click)
 

  극진 가라데의 총수인 최영의 님(최배달-바람의 파이터)도 전 세계를 돌며 많은 무술가들과 싸워서 모두 이겼지만(심지어 스페인에서는 투우 전용 황소와도 맨손으로 싸워서 한방에 넘긴적이 있다), 그가 가장 힘들었던 상대가 태국의 Muay Thai 선수 "블랙 코브라"와의 대전이었다고 회고한적이 있다.

  다른 나라 선수를 차례로 물리칠 때마다 Muay Thai의 인기는 날로 높아갔다.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이것을 해보지 않은 태국의 남자가 거의 없을 정도다.요즈음도 해질녘이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방콕에서 규모가 가장 큰 룸피니(Rumpini)나 라차담넌(Ratchadamnern) 경기장 등으로 몰려가고, 일요일 오후에는 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텔레비젼으로 무에타이 경기를 시청한다. 몇년 전부터는 전세계적으로 STAR TV에서 매주 두번씩(1회는재방송) 태국의 시합을 중개하여 국내에서도 많은 이들이 보았으나 현재는 중단된 상태이다. 하지만 태국 3tv(토요일 오전 11시 30분), 7tv(일요일 오후 4시) 방송을 통해 생방송으로 무에타이 경기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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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5. 6